또 비 온다
그날도 비가 왔지
밤새 마신 막걸리는
대학 잔디밭, 고향의 바다, 잃은 첫사랑으로
서로를 다 적셨지만
이상하게 우리는 취하지 않았고
밤새 발 밑은
종로 포장마차, 광화문 현판 앞, 인사동 골목으로
서로를 취하게 했지만
꿈꾸듯 우리는 젖지 않았지
테잎 앞뒷면을 세 번이나 돌았던 죽은 김광석
말은 안 했지만 다 알고 있는 세상이었기에
탁자 위에 깍두기, 빈 술통, 소란한 침묵, 처량한 웃음
답은 없었지만 어차피 흘러갈 세월이었기에
또 비 온다
이제는 속절없이
술 마시면 취하고 비 맞으면 젖는 나는
언제 또 술 젖고 언제 또 비 취할까
그래 또 비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