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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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3

시·소설 2009/03/18 18:16 by 철구

 

3.


무료할 때면 고철구는 삼거리 노래주점 2층 영 빌라드홀에 드나들었다. 변부장을 비롯해 일행이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 들르던 곳이었는데 그때 이곳 사장과 얼굴을 튼 덕분에 요즘도 상대가 없는 손님과 당구를 쳐주면 무안하지 않게 점심 한 그릇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었다. 영 빌라드홀 박사장은 저녁 아홉시가 넘으면 계단 셔터를 내리고 판을 벌였다. 세븐 오디였고 사실 그도 당구보다는 이 판을 기웃거렸다. 주로 잃는 쪽이었는데 많을 때는 하룻밤에 육십도 날아갔다.
닭발은 그가 오씨를 잘 친다고 오씨 삼촌이라고 불렀다. 뽀쁠 잡고 히든 쫓아오지 말랑께요. 줄 싸움에 원피가 왜 끼어든다요? 레이스 달릴 거면 따다당으로 받아야지 다섯 개는 또 어느 집구석 트럼프당가? 어설픈 샤킹 치다 좆 물리는 수 있어라. 주로 따는 쪽은 닭발이었다. 종종 스테끼도 섞어 돌릴 만큼 닭발은 아마추어 중에서는 선수였고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닭발이 눈두덩을 긁으면 박사장은 카드를 덮었으니 박사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판쓸이를 한 닭발이 호기롭게 지폐를 세며 박사장과 삼거리 노래주점으로 향할 때 뜨내기인 그는 끼지 못했다.


가지고 오는 판돈의 액수도 적어지고, 받은 개평으로 다시 판에 끼는 일이 잦아지자 닭발이 그를 보고 말했다.

“삼십 잃고 뽀찌 십 받았으믄 아따 복 받았다 하고 벌떡 일어나는 게 법치국가의 매너 아니겄소?”

“전에 잃은 돈이 있으니까 그렇지.”

“워매, 잘하믄 십대조 조상님 투전판에서 잃은 돈도 여기서 찾을락 하겄네?”

“삼대조까지만 찾자.”

“뿌리 깊은 노름판 호구 족보 같은디 그게 여그서 찾아질랑가 모르겄소.”

그럴 때마다 닭발은 보란 듯이 눈두덩을 긁었다. 새벽이 되면 그에게는 천 원짜리 몇 장만 남아 있었다.


소주 한 병과 라면을 사들고 은하장으로 돌아오는데 304호 여자가 여관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여자 앞에는 몸에 딱 맞게 교복을 줄여 입은 남학생이 서 있었다. 여자의 양 슬리퍼 사이에는 하얀 포말과 함께 침이 가득 고여 있었는데 은하장의 침침한 아크릴 간판 불빛이 그 침의 연못에 반사될 듯싶었다. 모른 척 지나치려는데, 씨발새꺄, 불현듯 여자가 일어나 남학생의 배를 걷어찼다. 남학생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자 여자는 이어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남학생은 당황스러워서 그의 눈치를 살폈고 그는 못 본 척 여관 계단에 올라섰다. 여자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2층 층계참에 멈춰 섰다. 벽에 기댔다.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고 여자는 악에 받쳐 있었다. 보도방 차리자고 한 건 넌데 그 돈을 왜 내가 갚아. 나 수배 떨어졌다니까. 소문나서 이제 조건도 칠만 원밖에 못 받아. 채팅 싸이트를 바꿔. 피씨방 갈 돈도 없어, 개새꺄. 성철이형만 오면 다 된다니까. 은경아 오빠 믿어. 오빠가 다 해결해, 은경아.


여자의 이름은 은경이었다. 그러자 연기처럼 어렴풋이 그의 방을 떠돌던 여자의 신음소리가 선과 색을 얻은 것처럼 또렷해졌다. 이를 테면 그것은 장마 뒤 불은 물살처럼 흐벅진 선이었고 초봄 새순처럼 여린 녹색이었다. 그 녹색의 물살에 몸을 담그면 무엇인가에 감염될 것 같았고 그의 몸 안에서도 여자와 같은 소리가 새어나올 것 같았다. 그것은 비릊는 소리도, 기갈에 잠긴 소리도, 욕정에 동인 소리도 아닐 것이었다.


계단 아래에서 빠른 발소리가 들려 그는 멈춰 섰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은경이였다. 여자는 그를 무심히 지나쳐 바삐 3층 계단으로 접어들었다. 여자가 가르고 간 공기는 스산했지만 그 공기의 결마다 녹색의 흐벅진 선이 잔상처럼 이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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