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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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는 아빠가 노무현을 싫어하고 엉뚱하게 이명박을 변호하는 게 이해가 안가.
왜냐면 내가 보기에는 진짜 아빠랑 노무현이랑 비슷하거든.

아빠, 검찰 수사가 과하다 어떻다 얘기하는 거,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아빠가 그러잖아. 근데, 아빠 그거 아빠 어디서 많이 보던거 아니야?
회사 생활 40년 하면서 아빠도 많이 봤잖아.
‘전임 사장 병신 만들기’ 아빠 그거 많이 봤잖아.
나도 회사 생활 7년 밖에 안 봤지만 나 그거 많이 봤어.
사장 바뀔 때 마다 봤어.
전 사장이 뭘 잘못했네, 뭘 잘못했네.
심지어 비리가 장난 아니었네. 막 이런 얘기가 현재 사장을 중심으로 흘러나오잖아.
오래 근무하고, 직원들에게 존경과 신망을 받는 사장일 수록
현재 사장들이 전임 사장 나쁜 놈 만들기 더 심하게 하잖아.
그렇게 하면 몇몇 측근들은 떨어져 나가고, 몇몇 측근들은 현 사장한테 더 바짝 붙고.
많이 봤잖아.

아빠. 아빠가 그랬잖아.
아빠가 바로 owner 따로 있는 중견 기업에서 전무 10년, 사장 10년 했던 사람이잖아.
사람들이 임원 그렇게 오래했으면 집에 금송아지가 있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그저 그 동안 자식들 대학교육 등록금 걱정 없이 시키고, 그저 집한칸 있는게 전부인 사람이잖아.
물욕은 별로 없는 편이라 모아 놓은 재산은 없어도
본인 신념 장난 아니고, 명예욕 강해서 한점 티끌 오점 안 남기고 싶어하고. 그게 아빠잖아.

아빠, 생각나?
아빠 신입사원일 때 부터 부리던 회장님 돌아가시고, 아빠보다 몇살 어린 그 아들이 회장에 올랐을 때.
아빠 사직 시킬 때 어떻게 했는지. 생각나잖아.
그 회사 30년 가까이 재직하면서 아빠 따르는 무리들 많으니까.
아빠에 대한 악성 소문 퍼뜨리고, 사장 재직 10년 동안 어디 빼돌린거 없나 장부 이잡듯이 조사하고.
간혹 투자 실패 한 건수에 대해서는 악의적으로 막 액수 부풀리고.
아들딸들한테 빼돌린 거 없나해서 별 조사를 다 했잖아.
아빠가 중국에 신규 공장 짓고 한거는 아빠가 회사 말아먹으려고 일부러 한 공작이라고
그런 식으로 회사에 소문냈었잖아. 아빠가 늘 말하듯 ‘나는 현미경으로 뒤져도 자신 있다’라는 말 덕분인지
아빠 불명예 퇴직 시킬 건수가 없으니까 결국 여론 만들고 소문 만들었잖아.

아빠, 아빠는 늘 당당하게 얘기하잖아.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직원들 향해서 가슴아픈 결정 할 때도 있었고.
정말 이게 아니다 싶을 때 회장한테 엄청 대들면서 반대 결정을 할 때도 많았지만.
모두 회사를 위한 결정이었고, 회사는 10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일터이자 보금자리이기 때문에
그곳을 정말 제대로 가꾸기 위해서 늘 노력한 거라고.

아빠, 아빠는 늘 회장하고 싸우고 회사를 위해 노력했지만,
직원들한테 존경도 받았지만,
아빠를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잖아.
자본의 개. 악덕 경영자.

아빠, 얼마전에 같이 내조의 여왕 봤잖아.
아빠가 내조의 여왕 보면서 아빠도 은연중에 스토리 따라서 ‘사장 태봉씨’편 드는 거 보고 놀랐다.
아빠, 조중동 뉴스도 아닌데, 드라마에서까지 ‘Owner’편 드는 거 이상하지 않어?
내가 우리나라 드라마들은 ‘오너 경영을 당연시 하고, 오너의 승리가 궁극의 선이며, 회사에 충성하는 전문 경영인들은 다 회사 팔아먹으려는 나쁜 놈들’로 묘사하는거 이상하지 않아? 하니까, 아빠도, ‘그래 맞다.’그러면서 고개 끄덕였잖아.

아빠, 벌써 퇴직한지가 5-6년이 되었는데.
이번 스승의 날에 아빠 회사 사람들이 집에 찾아왔잖아.
아빠가 직장에서, 삶의 터전에서 스승이었다고 집에 찾아왔잖아.
꽃바구니랑 아빠 좋아하던 양주 한병이랑 해서.
진짜 아무 댓가성 없이. 순수하게 아빠 보고 싶어서.
스무명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아빠도 정말 좋아했었잖아.

아빠.
회장한테 반대의견 제시한적 많으니까 아빠 빨갱이야?
의혹을 받았으면 죄가 있는게 확실한 거야?
아빠도 악덕경영자, 자본의 개라고 비난 받았으니까 진짜 악덕 경영자들이랑 결국 그놈이나 그놈이나야?
스승의 날 아빠 찾아온 사람들, 아빠가 현재 사장에 반대하면서 선동한거야?

아빠.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 생각안하고.
학습된대로 생각하기는 쉬워.
아빠. 고착화된 Owner체제를 쉽게 받아들이지 마. 왜 직접 owner랑 대립할 때는 그렇게 신념이 강하다가, 드라마를 통해 남의 구경할 때는 무조건 owner편이야?
어제 저녁에 이건희 이재용 증여 무죄 판결 난 걸 봤어. 그걸 보다가 이 모든 것이 생각났어. 아빠는 또 습관적으로 판결이 옳다는 얘기를 할지도 몰라. 하지만 아빠도 알잖아? 전문 경영인들은 다 쇠고랑 찼어. 이건희 부자만 무죄야. 아빠 누누히 봐 왔잖아. 최종현 최태원은 조사만 받고, 손길승은 구속 돼. 습관적으로 생각하지 마. 경영에서는 안 그러면서 왜 정치에서는 그래?

아빠. 노무현은 희생자가 맞아.
아빠한테 민주당을 지지하라는 것도 아니고, 진보신당을 지지하라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정치 이상을 구현하라는 것도 아니야. 노무현 비판을 하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야 물론. 다만, 그놈들 하는 짓을 좀 제대로 쳐다보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싶어.
그 놈들이 노무현한테 하는 짓은, 국민들한테 하는 짓은 회장댁이 아빠와 직원들에게 했던 짓이랑 비슷하다고.



2009/06/01 17:30 2009/06/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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