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불량

철구'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만약 내가 '서편제' 이후의 임권택이였다면 어땠을까? '서편제'로 초대박을 터뜨린 반면 '태백산맥' '창'으로 지지부진을 걷고 있었던 상황에서 '서편제2'를 떠올렸을 법도 하다. 임권택은 '서편제'를 찍는 과정에서 우리의 소리의 깊이를 그제서야 깨달았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래서 머리를 짠다. 아예 판소리를 왕창 영화로 옮겨나 봐? 결과는 미지수다. '춘향뎐' 촬영 일지에서도 드러났지만 수차 시행착오를 겪었다. 아이템만 가지고 길을 떠났지만 어디에서 이 길이 끝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남은 결과는 처음 시작한 아이템 그 뿐, 영화가 만들어지고 손에 남겨진 것은 또 남아야 할 것은 모두 삭아 버렸다.  

사실, '춘향뎐'을 보기 전 각계의 호평에 고무된 나 철구 역시 미리 '춘향뎐'이란 영화를 못 박아버렸다. 많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어느 정도는 뛰어나리라. 자꾸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그 재질과 깊이에 의심이 끼기 시작한 임권택에 대한 모든 의문을 일소하리라. 그러나 웬걸? 영화를 보고 나와서 오히려 임권택의 재질에 시꺼먼 먹장 구름이 밀려와 구라와 사기의 호우를 끼얹는 것이 아니냐... 또 속았다. 그렇다. 오직 한 생각 '또 속았다' 뿐이었다.  

아니, 그렇담 왜 그렇게 '춘향뎐'에 대해서 영화에 대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었단 말이더냐! 뭐, 그렇지. 태흥 영화사라는 끝발있는 곳에서 제작했고 임권택이라는 우리 영화판에서 짬밥수 최고 고참이 만들었는데 어느 정도 박수쳐 줘야겠지. 지네도 밥먹고 살려면 세상과 타협해야지. 그래, 이해하마. 그러나 그 영화평들을 보고 혹해서 아까운 돈과 시간을 쪼개 '춘향뎐'을 보러 룰루 랄라 극장을 향했던 관객들의 무너진 억장은 어디다 하소연하란 말이더냐!  

그리고 모주간 영화잡지(주간 영화잡지는 씨네21 밖에 없슴다.쩝)에 실린 임권택 인터뷰 기사에서 스스로 말하길 '서편제'에서 빌어먹는 그 소리꾼들의 무명 적삼이 그토록 깔끔했던 것이 두고 두고 맘에 걸렸다고 했으면서 (빌어먹는 넘들의 옷이 깔끔할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춘향뎐'에는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려서 최대한 고증에 따라 촬영에 임했다고 했으면서 목에 칼을 차고 벼룩, 이, 바퀴벌레 득시글 대는 깜방에서 옥고를 치른 후 어사로 다시 등장한 몽룡을 만나는 춘향이 얼굴이 그렇게 깨끗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입술 라인에 따라 립스틱 기가 막히게 그려넣고 눈썹 반듯하니 치켜 올리고 띡 봐도 화장품 냄새가 풀풀 풍길 정도로... 당시 감옥에는 전문 메이크 업 아리스트가 상주 근무했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르고 있었나 보다. 몽룡이가 타고 다니는 나귀가 몽고산인지 아라비아산인지 여튼 무지하게 비싼 것을 고증에 따라 섭외하여 출연시켰다고 뻐기던데 관객이 봐서 몽고산인지 아라비아산인지 저게 나귀인지 말인지도 모르는 것에 신경쓰지 말고 눈에 뻔히 보이는 배우들 분장에나 신경쓸 일이지.. 쯧쯧  

별 시덥잖은 것 갖고 꼬투리 잡아 팅자팅자 한다고 나를 나무랄지도 모른다. 음...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시비를 걸어보자.  

판소리라는 것이 굉장히 뛰어난 음악이라는 사실은 여기 저기서 귀동냥으로 들어는 왔다. 허나, 이를 어쩐다. 무식이 죄인지 무관심이 죄인지 판소리가 그다지 좋은 줄은 철구 역시 못 느끼고 있었다. 학창 시절 술자리에서 간간히 전해들은 '사랑가'와 '옥중가' 만은 가슴을 때리는 무언가가 있음을 조금이나마 감잡고 있었지만 그 두 노래 때문에 판소리를 전부 이해한다고 한다면 순구라요 뻥이요 사기일 것이다.  

설령, 판소리 구체적으로 판소리 춘향전이 너무나 뛰어난 음악임을 온 몸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건 판소리 춘향전이 뛰어나다는 것이지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이 뛰어나다는 것도 뮤지컬 춘향전이 뛰어나다는 것도 영화 춘향전이 뛰어나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의도는 좋다 이거다. 판소리 춘향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의도는 좋았지만 그런 이유로 영화 '춘향뎐'이 뛰어나려면 영화 내내 사운드로 들려준 조상현 명창의 판소리가 아닌 영화적 무엇인가가 뛰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춘향뎐'이 조상현 명창의 소리를 제외한 무엇이 뛰어났을까?  

춘향이 이야기를 모르는 한국넘은 한국넘이 아니다. 춘향이, 이몽룡, 월매, 향단, 방자, 변학도까지 수십번 다른 모양 다른  캐릭터로 쥐어짜 울 궈 먹고 또 울 궈 먹은 덕에 우리는 더 이상 춘향이 이야기에서 신선함을 가질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극적인 재미를 노리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극영화에서 극의 재미가 이런 까닭으로 빠져 버렸으니 가장 커다란 영화의 메리트는 물거품이 된 셈... 그렇다면 다른 승부수가 있을까?

'춘향뎐'은 액자 형식이다. 정동극장에서 조상현 명창의 춘향전 완창 공연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막을 올린다. 그리고 조상현 명창의 소리에 준하는 영상이 소리를 따라 끼어든다. 이 역시 처음의 의도대로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 판소리를 영상으로 보여주려는 것... 잘 짜여진 드라마 투루기를 쫓던 임권택의 전작들에 비한다면 대단한 실험이며 제작 의도를 잘 살리는 그나마 눈에 띄는 장점이었다.

그러나 비유띠 벗트, 조상현 명창의 소리가 익어갈수록 관객의 흥이 살아나 자꾸 추임새를 넣는데 이 역시 오버가 아닐 수 있으랴!! 추임새 자체는 오버가 아니라 하더라도 관객의 어설픈 연기, 미리 짜고 넣는 티가 눈에 보이는 작위적인 목소리... 더우기 영화 초반 레포트를 쓰기 위해 공연을 보러 왔다는 학생들의 더빙 연기는 순간 느끼한 목소리로 '우리, 오랫만에 같이 누워보는군'을 떠올리게 하는 80년 초로 영화를 후퇴시켜 버렸다. 판소리라는 것이 마당의 현장감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설정했다고는 하지만 현장감을 살리기는 커녕 소리하는 조상현이나 듣는 청객들이나 모두 연기이며 쇼에 불과함을 보여 버렸다.  

임권택의 영화는 배우의 연기에 많은 부분 힘을 빌리는 예의 전형이다. 대사수가 적은 것도 아니며 배우를 오브제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배우의 연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임권택 영화의 힘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판 짬밥 만땅이라는 임권택이, 게다가 거장이라는 소리까지 간간히 듣던 임권택이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지 못한다거나 감정을 조절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재질을 의심하게 하는 으뜸된 이유다.  

아무리 신인이라지만 두 주인공의 어설픈, 특히 춘향의 어설픈 연기를 보라. 신인이기 때문에 연기를 못해도 용서가 된단 말인가! 그의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들이 국제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았던 것은 임권택의 덕이 아닌 모두 그녀들의 덕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에게 던져진 여배우를 잘 키우는 감독이라는 칭찬은 이제 그만 치우기로 하자.  

사운드는 조상현 명창의 공인된 소리로 덮으면 된다 치고 그럼 화면은 어떻게 처리할까? '춘향뎐'에서 제일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광한루의 절경을 소개하는 판소리의 한 대목. '적성 아침 날에 안개가...녹수가 음영풍월..' 하면서 대강 소리가 시작되면 화면은 뻔히 광한루의 절경을 보여준다. 광한루 앞 연못을 보여주고 수학 여행가서 볼 때는 절대 보이지 않던 심심산골의 절경을 마치 광한루 앞의 절경인양 구라치며 보여준다. 그림책 펴 놓고 이제야 말 뗀 자식한테 '이게 뭐야?' '나비' '이게 뭐야?' '호랭이' 하는 식으로 친절하게 말이다. 아, 유치해 죽겠다. 완전 닭살이다.  

또 방자가 몽룡의 명을 받아 춘향을 부르러 가는 대목... 방자는 그나마 우스꽝스러운 품새로 깡총깡총 달음질친다. 원전에 전하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에 화면 역시 그 모습을 애써 흉내내려 한 셈이다. 그러나 과연 화면에서 보여준 방자의 모습이 소리가 전하는 혹은 소설 춘향전이 전하는 모습처럼 우스꽝스러웠을까? 하지만 이 역시 회의적이다. 그 부분에서 소리를 빼고 화면만 보여줬으면 '쟤, 어디 아픈 얘 아냐?' 했을 터. 하지만 판소리는 그 부분을 충분히 해학적으로 신명나게 그린다. 고로 화면은 소리를 쫓아가지 못했다. '춘향뎐'의 모든 화면은 그림책 수준일 뿐 결코 소설이나 판소리가 전하는 그 모습들을 살리지 못하고 흉내냈을 뿐이다.

편집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편집을 통해 수없이 많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은 말하면 입만 아픈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춘향뎐'의 편집은 조상현 명창의 소리에 따라 정확히 커팅된다. 하지만 소리에는 박자라는 것이 있다. 정확한 박자에 따라, 판소리 한 소절에 따라 '적성루가 어쩌고..' 하면서 소절이 끝나면 커팅, 또 '광한루가 어쩌고..저쩌고' 하면 커팅해 나가 어디서 커팅될지 보는 이는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화면은 그림책인데 편집은 시계추마냥 변함없이 똑같아 지루해서 죽을 뻔 했다. 판소리를 영화라는 매체의 대중적인 힘을 빌려 더욱 알리려는 것인가 아님 다 졸리게끔 만들어 판소리는 이처럼 졸리니까 보지 말라고 설교하는 것인가?  

뭐, 커팅이 지루한 영화는 굉장히 많다. 또한 커팅이 지루해도 훌륭한 영화 역시 굉장히 많다. 그러나 그림책과 같은 화면에 커팅 마저 지루한 영화는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일 뿐이다.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이 소요된다는 춘향전 완창을 두 시간으로 압축한데도 문제가 있다. 영화 특성상 시간이야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치자. 그렇다면 넣을 건 넣고 뺄 건 빼야 하는데 넣지 말아야 할 것은 넣고 실제 판소리에는 있지도 않은 것을 생구라 까가면서 끼어 넣었다. 무슨 소리냐구? 찬찬히 들어봐라.  

사실, 판소리 춘향전에 나오는 춘향이나 몽룡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지독히도 신분 상승을 꿈꾸는 춘향이나 여자에 눈멀어 우유부단하기만 한 몽룡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진 않건만 판소리에는 실제 춘향과 몽룡의 그런 모습이 등장한다. 한양으로 떠난다는 몽룡의 말에 지랄발광을 하는 춘향, 죽어서도 몽룡의 선산에 꼭 묻어달라는 춘향의 모습은 그녀를 포박하러 가는 집장사령들이 '고 년 양반 서방 얻었다고 도도하게 굴더니만 셈통이다'라 할 때 그 생소함이 증명된다. 또한 몽룡 역시 한양으로 떠난다 하니 배째고 등딴 후 자기를 버리라는 춘향의 기세에 겁먹어 조상님 신주를 꺼내고 거기에 춘향을 숨겨 가겠다는 당시로서는 개망나니같은 소리를 지껄여 쌈으로 영특하고 깔쌈했던 몽룡의 모습과는 다른 면을 보인다.  

이와 같은 춘향과 몽룡의 모습은 판소리가 구전심수로 전해지는 동안 가창자에 의해 조금씩 윤색된 결과이긴 할 터이지만 긴 시간동안 충분히 묘사됨으로 신빙성을 지닌다. 그리고 판소리 춘향전은 소리꾼이 판소리에 나오는 여러 화자의 목소리를 혼자서 낸다. 그러면서도 소리꾼 자신의 시선도 끼어든다. 찰스 램은 자기 자신이기만 하면 되지만 세익스피어는 햄릿도, 오필리어도, 리어왕도 되어야 했던 것처럼 소리꾼은 춘향이도 되었다가 몽룡이도 되고 방자도 되었다가 월매도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판소리 춘향전의 주인공은 춘향과 몽룡일 뿐만 아니라 방자도 되고 변학도도 되고 월매도 될 수 있다. 모두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인물들로 춘향전을 위해 집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모여 바로 춘향전을 이룬다는 것이다. 최근 마당놀이에서 흥부전이 아닌 놀부전, 춘향전이 아닌 변학도전, 월매전 등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리라...

그러나 영화 '춘향뎐'의 화자는 춘향과 몽룡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춘향과 몽룡의 다른 모습을 끼어 넣는다. 과연 판소리가 보이는 인물의 그런 중층적인 모습을 그려내는데 두 시간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더우기 영화의 마지막에는 판소리에는 있지도 않은 된소리 한 마디 '춘향은 국법을 어긴 죄인(당연하다. 당시 기생은 관기라 하여 나라에 소속된 나라 재산이며, 신분은 세습되는 것이 관습이었다)'이라는 뜨끔한 말을 생구라 까가면서 집어 넣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에이, 안 그래도 춘향이 하고 몽룡이가 대체 어떤 뇬넘들인지 헤깔려 죽겠구만 마지막까지 왜 그러는 거야 대체..  

이런 의문이 나올 만도 하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를 춘향과 몽룡으로 앞세워 놓고는 그래서 영화가 마치 춘향과 몽룡의 조숙한 사랑 이야기인 것처럼 뼁끼 부려 놓고는 끝에 가서 '춘향이는 조선 시대의 관습과 국법을 뛰어 넘은 혁명가인가?' '춘향이는 끊임없이 신분상승을 획책한 악녀인가?' '춘향이는 지고 지순한 사랑으로 세상을 감복시킨 열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변학도를 각색해 놨으니 말이다.  

순풍 산부인과 한참 재밌게 보는데 갑자기 마지막에 허준이 튀어나와 오지명 뒷통수에 대침을 한 열댓방 놓아도 이보다 황당하지는 않을거다. 아마도...  

이와 같은 문제들은 모두 감독의 재질과 관련한다. 임권택 감독은 판소리를 어떻게 영상화시킬까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처럼 영상화시키는 방법이야 삼척동자도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 아닌가? 판소리가 나오면 거기에 맞춰 판소리가 묘사하는 그림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그림은 소리의 소절에 따라 커팅하는 것. 새로울 것 하나도 없는 이같은 방법을 왜 그처럼 고생을 하며 생각해 냈는지 실로 의문이 생기기만 한다.  

나 철구와 같은 풋내기 문외한 역시 소시적에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찍었을 때 나레이터의 나레이션이 '우리의 전통 가옥은 우리 자연의 수려한 아름다움..어쩌구..' 하는 것이면 전통 가옥 찍어서 보여줬고 산과 들 찍어서 보여 줬었다. 하다못해 개차반이라 할 수 있는 나 철구도, 그리고 개나 소나 당연히 띡하면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대로 써먹어 놓고 고생을 했다고 하니 역시 거장은 거장인가 보다.  

사실, 거장이라 칭하는 세계의 여러 감독들을 보면 나름의 철학적인 세계관이 보인다. 그들 영화가 어려운 이유는 그 세계관이 깊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장이라는 칭함은 그 정도되는 자들만이 가져야 한다. 그들은 영화로 사유하며 사유하기 위해 영화를 해낸다.  

나 철구 결코 사대주의자가 아니며 특정 문화의 오타쿠 패밀리 역시 아니다. 때문에 공연히 임권택의 거장 칭함을 비아냥거리는 것 역시 아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문학적인 형식에 너무나 많이 기대있었고 또한 실제 소설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에 너무 많이 기대있었고 정일성 촬영감독에게 너무 많이 기대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그만의 세계가 없고 깊이도 얕을 뿐더러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영화를 한다. 거장이라는 칭함은 거둬들여야 할 것이다.  

그는 왜 지금 '춘향뎐'을 선택했을까? 처음에 언급했듯이 '춘향뎐'은 '서편제' 후 지리멸렬을 거듭했던 자신의 위기에 직면한 뒤 다시 '서편제'의 후광으로 들어가고픈 욕심이었을 뿐이다. 거기에는 자신만의 아무런 깊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깊이에 의해 '춘향뎐'을 선택하고 자신의 깊이로 재단해야 했던 그의 느낌이 읽히지 않는 것이다. 붕어빵 장사를 하다가 한 몫 건진 장삿꾼이 업종을 바꿔 군밤 장사도 해보고 호떡 장사도 해보다가 영 신통치 않으니까 다시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춘향뎐'에는 판소리만 있지 영화가 없다. 임권택도 이제는 정말 나이를 많이 먹어 버렸나 보다.



철구 백
2003/01/12 06:35 2003/01/12 06:35

TRACKBACK :: http://chulgoo.com/trackback/341

1  ... 646 647 648 649 650 651 652 653 654  ... 664 
BLOG main image
비너스의 불량
불량으로 대동단결
by 철구

공지사항

카테고리

전체 (664)
잡글 (216)
궁상 (157)
영화 (190)
시·소설 (41)
패러디기자협회보 (7)
샤따질 (51)
textcubeDesignMyselfget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