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겨울에는 희안하게도 내리는 눈을 한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드디어 오늘 내리는 눈을 보게 되었다. 매일 술먹고 집에서 시체놀이하다 깨어나면 깜짝 놀라게 눈이 쌓여 있고 하더니 오늘은 마침내 그 내리는 모습을 나에게 들켜 버린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눈이 마치 내 머리에서 흩날리는 비듬 마냥 자잘했다는 사실. 부시시 베게에서 고개를 들면 흩날리는 내 비듬들이 창 틈으로 쏟아지는 햇발에 부딪혀 반짝이는 그 광경도 결국 오늘 내리는 이 눈처럼 그다지 지저분한 모습은 아니였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아름다울 수도 있으니 원효대사님의 '일체유심조'를 떠올리며 극장을 나섰더랬다.
이쯤에선 이제 사정없이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에 대해 당근을 먹여야 할텐데 내가 던져주는 당근을 '여고괴담'이 먹고 싶어할 지가 일단 의문이다. 맛좋은 피망도 무쟈게 싫어하는 짱구가 있듯이 행여 내가 주는 당근을 싫어한다면 어찌 될까? 왜냐하면 나 철구가 '여고괴담'에게 던지는 당근이란 것이 다름 아니라 허벌나게 독특한 영화라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 '여고괴담'은 모두 알다시피 공포영화다. 앗,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공포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좌뇌를 후려친다. 분명, 귀신은 나오지만 무서운 장면은 하나도 없다. 스플래터 영화들처럼 골수 뽑아 피발라 쌈 싸먹고, 뼈와 살이 춤추는 엽기와 그로테스크의 향연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엽기의 신봉자로써 피터 잭슨의 영화들이나 몬도가네 혹은 홀로코스트 시리즈를 즐겨봤던 사람들이라면 눈 하나 깜짝않고 코 후비면서 해치우기 십상이고, 여자친구가 공포에 떨며 자신의 가슴에 파 묻히기를 노리며 이 영화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은 차라리 우리 구멍의 차타레에게 메일을 보내라. (그녀가 훨씬 더 공포스럽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공포 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한 번 살펴보면, 살인마 혹은 저주받은 악마가 있고 그 넘이 최대한 잔인하게 사람들을 토막내거나 해부해서 보내 버리면서 쥔공을 해치려 하면 쥔공은 몇 번의 위기를 넘긴 뒤 살인마를 제거한다는 스토리 라인이거나 혹은 저주를 풀 수 있는 어떠한 해결책을 얻기 위해 고생하다가 그 저주를 마침내 풀어낸다는 대강 뭐 그런 스토리를 따른다. 그 과정은 기승전결을 충실히 쫓음으로써 관객의 긴장을 탱탱하게 부풀려 놓기도 하고, 미스테리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무지에 대한 공포, 불안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는 이런 공포 영화의 장르 관습에서도 매우 독특하다.
그 하나는 실제 스토리 시간이 마구 마구 뒤섞여서 제시된다는 점이다. 영화에 나오는 시간적 배경은 크게 총 세 개인데 시은과 효신이 친하게 지내는 두어달 전, 그리고 헤어지게 되는 한 달전, 마지막으로 효신이 죽은 후인 현재이다. 그러나 이런 시간 배경은 물리적 시간을 따라 서술되기는 커녕 다소 복잡하게 마구 얽히고 섞여 관객은 그 시간마다 드러나는 이야기에서 비로서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별한 미스테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귀신이란 존재 자체가 섬뜩한 미스테리이긴 하지만...) 다만 난도질해 놓은 시간 속에서 사건의 원인을 나중에 보여줄 뿐이다. 둘째는 영화의 화자가 귀신이란 점이다. 전통적인 공포 영화 혹은 서사 영화의 화자는 사건의 주동인물인 주인공으로 촛점되어, 그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고 반동인물로 역할하는 살인마나 귀신을 제거하지만 이 영화는 주동인물처럼 보이는 주인공 소민아는 사실 아무런 사건도 해결하지 못한 채 귀신인 효신을 대신해서 그녀가 준비한 잔치를 소개하는 영매사에 불과할 뿐 영화의 화자이면서 주동인물은 바로 귀신이었다.
나 철구가 그동안 보아온 영화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일까? 선이 악에게 좌절되어 실패하는 영화는 많이 봐왔지만 이처럼 철저하게 주동인물이 귀신이며, 그 귀신에 대항하는 아무런 노력도 시행되지 않은 채 주인공인줄 알았던 인물은 실상 주동인물인 귀신의 보조인물에 지나지 않은 영화는 난생 처음 봤다. 과거 '오멘' 시리즈 역시 사건의 주동인물은 이마에 666을 새기고 다니던 악마였지만 그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노력이 부딪히며 갈등한다. 그러나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는 어떤가? 효신을 없애기 위해 혹은 효신의 원한을 달래주기 위해 어떤 노력이 시도되는가? 천만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효신이 짜고 친 고스톱이였다. 이래도 독특하지 않은가?
# 처음 이야기했던 시간 순서를 난도질해 제시한다는 점은 그나마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 치부하고 덜 독특하다고 할 수도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 얘들이 말한 '자동화'라는 것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형식은 아무런 예술적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인데 물리적 시간에 순행하는 시간 배열이 요즘은 자동화되어 버렸는지 자꾸 그러한 시간 순서를 역으로 제시하는 편집 스타일이 지금 유행하는 것 같다. '박하사탕'의 경우는 편집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 자체가 아예 시간을 거슬러 버린다.
그러나 영화의 화자가 귀신이였다는 점은 정말 독특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는 효신이 죽고 난 후부터 자꾸 끼어드는 또다른 시선(굵은 입자의 낮은 해상도에 적정노출이 오버되어 부감샷으로 보여지는)을 감지하는데 이것이 죽은 효신의 시선이란 것은 모두 알고 있다. 또한 이런 류의 시선을 제시하는 영화는 그간 꽤나 보아왔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학교와 학생들과 선생님에게 저주를 내리기 위한 효신의 자작극이였으며 관객은 치밀하게 준비된 효신의 원맨쇼를 깜빡 속아 보아준 것이다.
한때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 다짐하던 시절, 나 철구가 쓰고 싶어 매달리던 이야기는 완벽하게 관객들을 사기치는 그런 종류의 글이었다. '스팅'이나 '유주얼 서스펙트' 같이 이야기 자체로 속이는 그런 것 말고 '파니게임'처럼 영화와 현실이 혼재하면서 멋지게 구라 한 판 치는 그런 것. 영화 속의 리얼리티를 기대하는 관객들을 비숭으며 비디오 리모콘 리와인드 버튼으로 시간을 되돌리며 관객들을 멋지게 꼬나보던 '파니게임'의 두 깡패넘의 한 판 구라는 '너희들 이거 영화인 것 잊고 있었지!' 하며 보는 이를 조롱했다. 조롱 당하고도 기분 좋을 인간은 없지만 내 상상력의 저편에서 튀어나오는 그 넘들의 속임수에는 입이 쩍 벌어졌었다.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 역시 나의 상상력을 조롱하며 관객들에게 초대형 사기극을 준비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우리는 기존의 영화 보는 습관대로 화면에 자꾸 등장하는 소민아가 주인공이려니 여기고 (주인공은 또한 이처럼 이뻐야 한다) 그 습관대로 그 주인공이 귀신을 물리쳐 주려니 여긴다. 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 영화가 나아갈수록 우리는 우리가 돈주고 사온 영화표가 사실은 영화표가 아니라 너무도 원통한 효신이 미리 준비한 저주 파티의 초대장임을 그녀의 시선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파티를 주도하는 효신의 시선은 총 세가지 모습으로 드러난다. 효신이 죽기 전까지는 눈치 채이지 않게끔, 마치 이 영화가 보는 이의 예상대로 움직여 줄 영화인 양 그 시선은 숨어있다. 도입부에서 시은이 운동장을 달리는 것을 쫓아가기도 하고, 미리 자신이 수돗가에 갖다놓은 일기장을 소민아가 가지고 가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의 계획대로 소민아가 일기장을 통해 사건을 고조시켜 주길 기다리는 시선이 바로 그 첫번째 시선이다. '수돗가에서 일기장을 발견하는 소민아' 장면은 수돗가 위에 놓여진 일기장이 화면의 주요대조로 가까이 자리하고 그 뒤로 소민아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소민아의 동선은 주요대조로 화면의 중앙에 자리한 일기장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으로 움직인다. 만약 이 영화의 화자나 주동인물이 소민아였다면 그 반대의 화면구성이 어울릴 것이며, 일기장을 중심으로 찍고있는 카메라보다는 소민아의 동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카메라가 어울릴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부지부식간 소민아를 어떤 사건에 끌어 들이고 있는 숨어있는 또 다른 시선을 읽어내기 충분하다.
일기장을 읽어나가며 소민아는 차근 차근 효신의 과거를 소개하고 시은과의 관계를 이해시켜주며 점점 더 효신에 대해 많은 부분이 이해되어 갈수록 그녀가 퍼부을 저주의 시간도 다가온다. 그리고 효신이 죽은 후부터 아까 말한 시선이 끼어드는데 바로 그것이 그 두번째 시선이다.(과노출된 부감샷) 소민아가 가진 일기장을 통해 효신의 죽음에 대한 이해가 완성되어가면서 효시은 그 모습을 직접 나타내기 시작하다가 그녀의 저주가 학교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그 정점의 순간 그녀의 세번째 시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은 학교 건물의 유리 천정 밖에서 학생들을 혹은 관객들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이다. 그 마지막 시선에 의해 우리는 우리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소름이 돋는다. 소민아가 '여고괴담' 전편에서의 김규리처럼 학교 복도에서 축지법을 사용하는 귀신을 물리쳐 줄 것이라는 기대는 그저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소민아 역시 효신에 의해 미리 선택된 그녀의 연극을 위한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효신이 이유없이 학생들을 더 많이 죽였다거나 더 잔인하게 도륙했다면 우리는 이 마지막 시선에 의해 똥꼬가 꽉 막히는 공포를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귀신은 영화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 자체가 귀신이 준비한 난장이기 때문이다.
# 이런 이유로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는 업그레이드된 공포 영화다. '장르는 진화한다'고 본다면 기존의 공포 영화가 공포를 조장하던 방법으로부터 한 바퀴 진화해서 환골탈태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여고괴담'의 속편이 나온다고 들었을 때 그 전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보다 더 강한 자극, 예를 들어 폭력 교사, 학생 성희롱보다 더 노골적인 자극이 없으면 힘드리라 생각했는데 그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수를 틀어 전편을 뛰어 넘어 버렸다. 완벽하게 귀신의, 귀신에 의한, 귀신을 위한 영화라니....
그러나 독특한 영화는 얼마든지 있다. 최야성 감독의 영화들도 독특하기는 기가 차게 독특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의 독특함을 받쳐주는 것은 그 뛰어난 스타일에 있을 것이다. '키리에'라는 미사음악이 주는 엄숙함과 불안감, 핸드 헬드를 비롯한 각종 카메라 워킹, 조명,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한데 맞아 떨어진 지붕 위의 장면은 이미 수없이 많은 당근을 받았기에 더 이상 줄 당근이 없을 정도다. 전에 나 철구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야리기 한 판 했던 글에서 이명세 감독을 칭하길 '국내에서 구사할 수 있는 단어가 가장 풍부한 재담꾼'이라 했었는데 이 두 신인감독들 역시 풍부한 단어 구사력을 선보인다. 자신의 스타일이 풍부하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라도 더욱 맛깔스레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점이다.
# 영화의 중간에 두 여학생이 열렬히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군다나 한 여학생의 입가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미묘하면서도 조금은 말초적 흥분을 자극했다. (역시 난 변태였더란 말이냐!!)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서 내가 남자와 더우기 피를 질질 흘리는 남자와 키스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상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면 더욱 전율이 흐른다. 그 상대가 강쇠나 산지기라면? 우웩.... 철퍼덕-오바이트 소리) 마지막으로, 쏠림을 참아가며 키스씬을 나눈 두 여배우에게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치약 한 박스를 꼭 선물하리라 다짐하는 바이다.
이쯤에선 이제 사정없이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에 대해 당근을 먹여야 할텐데 내가 던져주는 당근을 '여고괴담'이 먹고 싶어할 지가 일단 의문이다. 맛좋은 피망도 무쟈게 싫어하는 짱구가 있듯이 행여 내가 주는 당근을 싫어한다면 어찌 될까? 왜냐하면 나 철구가 '여고괴담'에게 던지는 당근이란 것이 다름 아니라 허벌나게 독특한 영화라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 '여고괴담'은 모두 알다시피 공포영화다. 앗,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공포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좌뇌를 후려친다. 분명, 귀신은 나오지만 무서운 장면은 하나도 없다. 스플래터 영화들처럼 골수 뽑아 피발라 쌈 싸먹고, 뼈와 살이 춤추는 엽기와 그로테스크의 향연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엽기의 신봉자로써 피터 잭슨의 영화들이나 몬도가네 혹은 홀로코스트 시리즈를 즐겨봤던 사람들이라면 눈 하나 깜짝않고 코 후비면서 해치우기 십상이고, 여자친구가 공포에 떨며 자신의 가슴에 파 묻히기를 노리며 이 영화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은 차라리 우리 구멍의 차타레에게 메일을 보내라. (그녀가 훨씬 더 공포스럽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공포 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한 번 살펴보면, 살인마 혹은 저주받은 악마가 있고 그 넘이 최대한 잔인하게 사람들을 토막내거나 해부해서 보내 버리면서 쥔공을 해치려 하면 쥔공은 몇 번의 위기를 넘긴 뒤 살인마를 제거한다는 스토리 라인이거나 혹은 저주를 풀 수 있는 어떠한 해결책을 얻기 위해 고생하다가 그 저주를 마침내 풀어낸다는 대강 뭐 그런 스토리를 따른다. 그 과정은 기승전결을 충실히 쫓음으로써 관객의 긴장을 탱탱하게 부풀려 놓기도 하고, 미스테리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무지에 대한 공포, 불안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는 이런 공포 영화의 장르 관습에서도 매우 독특하다.
그 하나는 실제 스토리 시간이 마구 마구 뒤섞여서 제시된다는 점이다. 영화에 나오는 시간적 배경은 크게 총 세 개인데 시은과 효신이 친하게 지내는 두어달 전, 그리고 헤어지게 되는 한 달전, 마지막으로 효신이 죽은 후인 현재이다. 그러나 이런 시간 배경은 물리적 시간을 따라 서술되기는 커녕 다소 복잡하게 마구 얽히고 섞여 관객은 그 시간마다 드러나는 이야기에서 비로서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별한 미스테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귀신이란 존재 자체가 섬뜩한 미스테리이긴 하지만...) 다만 난도질해 놓은 시간 속에서 사건의 원인을 나중에 보여줄 뿐이다. 둘째는 영화의 화자가 귀신이란 점이다. 전통적인 공포 영화 혹은 서사 영화의 화자는 사건의 주동인물인 주인공으로 촛점되어, 그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고 반동인물로 역할하는 살인마나 귀신을 제거하지만 이 영화는 주동인물처럼 보이는 주인공 소민아는 사실 아무런 사건도 해결하지 못한 채 귀신인 효신을 대신해서 그녀가 준비한 잔치를 소개하는 영매사에 불과할 뿐 영화의 화자이면서 주동인물은 바로 귀신이었다.
나 철구가 그동안 보아온 영화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일까? 선이 악에게 좌절되어 실패하는 영화는 많이 봐왔지만 이처럼 철저하게 주동인물이 귀신이며, 그 귀신에 대항하는 아무런 노력도 시행되지 않은 채 주인공인줄 알았던 인물은 실상 주동인물인 귀신의 보조인물에 지나지 않은 영화는 난생 처음 봤다. 과거 '오멘' 시리즈 역시 사건의 주동인물은 이마에 666을 새기고 다니던 악마였지만 그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노력이 부딪히며 갈등한다. 그러나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는 어떤가? 효신을 없애기 위해 혹은 효신의 원한을 달래주기 위해 어떤 노력이 시도되는가? 천만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효신이 짜고 친 고스톱이였다. 이래도 독특하지 않은가?
# 처음 이야기했던 시간 순서를 난도질해 제시한다는 점은 그나마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 치부하고 덜 독특하다고 할 수도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 얘들이 말한 '자동화'라는 것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형식은 아무런 예술적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인데 물리적 시간에 순행하는 시간 배열이 요즘은 자동화되어 버렸는지 자꾸 그러한 시간 순서를 역으로 제시하는 편집 스타일이 지금 유행하는 것 같다. '박하사탕'의 경우는 편집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 자체가 아예 시간을 거슬러 버린다.
그러나 영화의 화자가 귀신이였다는 점은 정말 독특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는 효신이 죽고 난 후부터 자꾸 끼어드는 또다른 시선(굵은 입자의 낮은 해상도에 적정노출이 오버되어 부감샷으로 보여지는)을 감지하는데 이것이 죽은 효신의 시선이란 것은 모두 알고 있다. 또한 이런 류의 시선을 제시하는 영화는 그간 꽤나 보아왔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학교와 학생들과 선생님에게 저주를 내리기 위한 효신의 자작극이였으며 관객은 치밀하게 준비된 효신의 원맨쇼를 깜빡 속아 보아준 것이다.
한때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 다짐하던 시절, 나 철구가 쓰고 싶어 매달리던 이야기는 완벽하게 관객들을 사기치는 그런 종류의 글이었다. '스팅'이나 '유주얼 서스펙트' 같이 이야기 자체로 속이는 그런 것 말고 '파니게임'처럼 영화와 현실이 혼재하면서 멋지게 구라 한 판 치는 그런 것. 영화 속의 리얼리티를 기대하는 관객들을 비숭으며 비디오 리모콘 리와인드 버튼으로 시간을 되돌리며 관객들을 멋지게 꼬나보던 '파니게임'의 두 깡패넘의 한 판 구라는 '너희들 이거 영화인 것 잊고 있었지!' 하며 보는 이를 조롱했다. 조롱 당하고도 기분 좋을 인간은 없지만 내 상상력의 저편에서 튀어나오는 그 넘들의 속임수에는 입이 쩍 벌어졌었다.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 역시 나의 상상력을 조롱하며 관객들에게 초대형 사기극을 준비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우리는 기존의 영화 보는 습관대로 화면에 자꾸 등장하는 소민아가 주인공이려니 여기고 (주인공은 또한 이처럼 이뻐야 한다) 그 습관대로 그 주인공이 귀신을 물리쳐 주려니 여긴다. 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 영화가 나아갈수록 우리는 우리가 돈주고 사온 영화표가 사실은 영화표가 아니라 너무도 원통한 효신이 미리 준비한 저주 파티의 초대장임을 그녀의 시선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파티를 주도하는 효신의 시선은 총 세가지 모습으로 드러난다. 효신이 죽기 전까지는 눈치 채이지 않게끔, 마치 이 영화가 보는 이의 예상대로 움직여 줄 영화인 양 그 시선은 숨어있다. 도입부에서 시은이 운동장을 달리는 것을 쫓아가기도 하고, 미리 자신이 수돗가에 갖다놓은 일기장을 소민아가 가지고 가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의 계획대로 소민아가 일기장을 통해 사건을 고조시켜 주길 기다리는 시선이 바로 그 첫번째 시선이다. '수돗가에서 일기장을 발견하는 소민아' 장면은 수돗가 위에 놓여진 일기장이 화면의 주요대조로 가까이 자리하고 그 뒤로 소민아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소민아의 동선은 주요대조로 화면의 중앙에 자리한 일기장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으로 움직인다. 만약 이 영화의 화자나 주동인물이 소민아였다면 그 반대의 화면구성이 어울릴 것이며, 일기장을 중심으로 찍고있는 카메라보다는 소민아의 동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카메라가 어울릴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부지부식간 소민아를 어떤 사건에 끌어 들이고 있는 숨어있는 또 다른 시선을 읽어내기 충분하다.
일기장을 읽어나가며 소민아는 차근 차근 효신의 과거를 소개하고 시은과의 관계를 이해시켜주며 점점 더 효신에 대해 많은 부분이 이해되어 갈수록 그녀가 퍼부을 저주의 시간도 다가온다. 그리고 효신이 죽은 후부터 아까 말한 시선이 끼어드는데 바로 그것이 그 두번째 시선이다.(과노출된 부감샷) 소민아가 가진 일기장을 통해 효신의 죽음에 대한 이해가 완성되어가면서 효시은 그 모습을 직접 나타내기 시작하다가 그녀의 저주가 학교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그 정점의 순간 그녀의 세번째 시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은 학교 건물의 유리 천정 밖에서 학생들을 혹은 관객들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이다. 그 마지막 시선에 의해 우리는 우리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소름이 돋는다. 소민아가 '여고괴담' 전편에서의 김규리처럼 학교 복도에서 축지법을 사용하는 귀신을 물리쳐 줄 것이라는 기대는 그저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소민아 역시 효신에 의해 미리 선택된 그녀의 연극을 위한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효신이 이유없이 학생들을 더 많이 죽였다거나 더 잔인하게 도륙했다면 우리는 이 마지막 시선에 의해 똥꼬가 꽉 막히는 공포를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귀신은 영화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 자체가 귀신이 준비한 난장이기 때문이다.
# 이런 이유로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는 업그레이드된 공포 영화다. '장르는 진화한다'고 본다면 기존의 공포 영화가 공포를 조장하던 방법으로부터 한 바퀴 진화해서 환골탈태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여고괴담'의 속편이 나온다고 들었을 때 그 전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보다 더 강한 자극, 예를 들어 폭력 교사, 학생 성희롱보다 더 노골적인 자극이 없으면 힘드리라 생각했는데 그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수를 틀어 전편을 뛰어 넘어 버렸다. 완벽하게 귀신의, 귀신에 의한, 귀신을 위한 영화라니....
그러나 독특한 영화는 얼마든지 있다. 최야성 감독의 영화들도 독특하기는 기가 차게 독특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여고괴담, 그 두번째 이야기'의 독특함을 받쳐주는 것은 그 뛰어난 스타일에 있을 것이다. '키리에'라는 미사음악이 주는 엄숙함과 불안감, 핸드 헬드를 비롯한 각종 카메라 워킹, 조명,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한데 맞아 떨어진 지붕 위의 장면은 이미 수없이 많은 당근을 받았기에 더 이상 줄 당근이 없을 정도다. 전에 나 철구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야리기 한 판 했던 글에서 이명세 감독을 칭하길 '국내에서 구사할 수 있는 단어가 가장 풍부한 재담꾼'이라 했었는데 이 두 신인감독들 역시 풍부한 단어 구사력을 선보인다. 자신의 스타일이 풍부하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라도 더욱 맛깔스레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점이다.
# 영화의 중간에 두 여학생이 열렬히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군다나 한 여학생의 입가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미묘하면서도 조금은 말초적 흥분을 자극했다. (역시 난 변태였더란 말이냐!!)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서 내가 남자와 더우기 피를 질질 흘리는 남자와 키스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상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면 더욱 전율이 흐른다. 그 상대가 강쇠나 산지기라면? 우웩.... 철퍼덕-오바이트 소리) 마지막으로, 쏠림을 참아가며 키스씬을 나눈 두 여배우에게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치약 한 박스를 꼭 선물하리라 다짐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