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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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날 밤 잠들면서 그들은 각자 결심했다. 일단 준호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을 마스터해야겠다고 철구는 결심했고, 간만에 백화점 가서 준호 가을 옷을 장만해야겠다고 윤정은 결심했고, 시골 종질네 포도밭에 준호와 다녀와야겠다고 경자는 결심했고, ‘친구들 불러서 놀고 싶으니까 엄마 아빠 밖에서 데이트 좀 하고 와’ 하고 권해야겠다고 준호는 결심했다.

다음날 약속대로 철구는 당첨금을 찾아 자기 통장으로 이체한 뒤 백화점에서 쇼핑을 마친 윤정을 만나 옥신각신 점심을 했고, 경자는 며칠 후 준호를 보내라며 먼저 시골로 내려갔고, 준호는 빈집에 친구들을 불러 새로 산 게임기를 자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철구가 투쟁위원장으로 있는 조합사무실에 누군가 뛰어들었다.

“위원장 없어?”

사무실에 있던 다른 조합원이 말했다.

“며칠 못 나오신다는데 왜?”
“오늘 법원에서 가압류 결정 났단다.”
“또 시작이구만. 하라 그래 시펄. 뭐 우리한테 가져갈 거라도 남았나.”
“그렇더라도 조합은 힘들어지지. 펜스 걷어버린 것도 있고, 경비 다친 것도 있고.”
“거참. 걔네만 다쳤나? 맘 약해지게 자네 왜 그래?”
“접때 전력실 동지들 집회 나왔던 적 있잖아. 그 때문에 전체 공장이 조업중단 됐단다. 사측 피해가 막심하대.”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그래, 가압류는 얼마나 때렸는데?”
“조합 간부 두당 16억. 집 있는 사람은 집, 없는 사람은 통장, 아주 무차별이다.”
“개새끼들.”
“아주 죽으라고 한다. 죽으라고......”

다시 돌아와 같은 시간. 윤정과 점심을 먹고 있던 철구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돼서 하는 얘기지만 당신과 이혼하려는 이유가 말이야. 당신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게 너무 커. 죽어라 나를 실업자, 무능력자, 백수라고 구박하지만 난 사실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 일을 하고 있었던 거라구. 노동자가 맘 편히 살 수 있는 세상 만드는 일. 이게 어디 보통 일이냔 말이지. 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 맥주 한 잔 할까?”

무뚝뚝하게 윤정이 답했다.

“하이고. 그게요, 발등에 불이 활활 타는데 개폼 잡고 섰는 거예요. 새끼들 밥 굶고 집이 홀라당 타봐야 정신 차리지. 발등에 불이나 꺼 이 양반아.”


<끝>
2005/10/06 20:09 2005/10/0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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