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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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가 놀랐다. 국과수

잡글 2005/11/28 01:42 by 철구
우리나라 국과수에 비하면 CSI는 애들 장난 수준이다.

고 전용철 씨. 15일 농민집회에서 전경들에게 구타를 당한 뒤 의식을 잃었으며, 같은 날 충남 보령으로 돌아가 고통을 호소하다 17일 보령병원을 찾았고, 24일 끝내 운명했다.

그런데 국과수는 전용철 씨를 부검한 뒤 사인은 '넘어져서 다쳤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의사들의 말에 따르자면 부검으로는 머리에 충격을 받아 뇌출혈을 일으켰다는 사실 밖에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그 충격이 어떤 충격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과수는 사인이 충격에 의한 뇌출혈이라는 사실을 넘어, 전용철 씨가 15일 귀향 후, 17일 병원을 찾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넘어졌다는 사실까지 밝혀내 버렸다.

어디에서 넘어졌을까? 그건 동네 주민들은 물론 가족들도 모른다. 주민들의 얘기대로라면 전용철 씨는 15일에서 17일까지 마을회관에 있었고, 현재 경찰은 마을회관 밖에서 전용철 씨를 본 사람이 있는지 찾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국과수는 모두 다 알고 있다. 전경에게 구타를 당해 병원을 찾은 사람의 사인이 '그냥 넘어졌기 때문'이라는 가공할 사실을 알고,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처럼 누군가가 자살하는 걸 지켜보며 유서를 대신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경악할 사실을 알고 있다.

2003년 11월. 분신하여 죽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앞에 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자살을 운동의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

다시 쌍팔년도로 돌아가 버린 듯한 이 사건 앞에서, 이제 그는 뭐라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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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만든 전투경찰 제도. 어찌 됐건 이번 사건 역시 조카같은 전투경찰이, 삼촌같은 농민을 구타하여 사망케 했다.

그토록 신성하다는 국방의 의무를 지기 위해 입대했지만, 국방은 커녕 시위진압에 나서야 하는 제도. 국방부가 아닌 행자부 소속으로 복무해야 하는 제도.

전투경찰 제도가 처음 생겼을 당시에는 빈번한 간첩 사건이 발생했었고, 때문에 박정희는 대간첩작전과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전경제를 신설했지만(물론 다른 목적이 더 컸지만), 지금의 전경은 대간첩 작전은커녕 시위진압에만 나서고 있다.

적들과 싸우기 위해 푸른 청춘의 한 페이지를 기꺼이 희생하고 나선 청년들을 이렇게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적들과 대치해야 할 청년들을 시민과 대치하게 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전경제도는 전에 이미 위헌소송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합헌 결정이 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있어야 할 듯하다.

적들로부터 부모와 형제와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자진하여 나선 청년들이, 자신들이 지키겠다는 그 부모와 형제와 친구들을 향해 방패를 갈고 있는 모습. 이건 국가가 만들어 낸 비극이기 때문이다.
2005/11/28 01:42 2005/11/28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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